10월 28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하나님은 창 12:1~2에서 아브람에게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라고 명하시면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라는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창 23:1의 기록과 같이 사라가 127세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아브라함에게 남은 것은 단 한 명의 아들 이삭과, 정착할 땅도 없이 다니던 삶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크기에 비해서는 너무도 미약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기간 동안 만난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습니다.
창 23:9에는 아브라함이 사라가 죽은 지방에 사는 헷 족속에게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라고 청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땅의 주인인 헷 족속의 에브론은 흔쾌히 그 땅을 아무 대가 없이 아브라함에게 주겠다고 말하지만, 아브라함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고 그 땅을 소유하겠다는 의지를 밝힙니다. 에브론의 호의에도, 아브라함은 끝까지 자신이 그 땅의 값을 치르겠다는 뜻을 전합니다.(창 23:13)
결국 아브라함은 은 사백 세겔이라는 값을 치르고서야 사라를 장사할 막벨라 굴과 그 주변의 밭을 사게 됩니다.(창 23:16~18) 그 값은 에브론이 대가 없이 주겠다는 호의에 비해서는 매우 비싼 값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으나, 아브라함에게 그 값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창 23:20에는 ‘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라는 말씀을 통해 이 ‘확정’의 의미가 아주 중요한 것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값을 치르고 아브라함이 소유하게 된 그 땅의 용도는 다름아닌 ‘매장지’였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정하신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지만, 그것은 그가 이 땅에서 거할 정착지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라의 매장지로 시작된 막벨라 굴은 나중에 아브라함뿐 아니라, 그 자손들이 묻히는 땅이 됩니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죽음을 넘어선 하나님 나라를 거할 곳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영생의 은혜는 결코 사람의 도움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아브라함은 그 땅의 값을 모두 치르고서야 그 땅의 소유를 자신의 것으로 확정한 것입니다. 일생 나그네의 삶을 살았던 그가 정착할 곳으로 확정하여 받은 땅은 바로 하나님 나라에 거하는 영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막벨라 굴’은 죽음 이후의 세계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창 23:19에는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라는 해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벨라 굴’이 위치한 땅은 후에 헤브론으로 불리며,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지는 땅이 됩니다. 나그네에게 주어진 작은 매장지는 하나님의 언약대로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언약의 작은 씨앗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작은 씨앗 속에서도 여전히 이어지는 하나님의 언약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언약은 헛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생각을 초월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매장지의 작은 땅에서 영생의 은혜를 볼 수 있었고, 자신은 보지 못해도 하나님의 약속은 이 땅에서도 성취될 것을 믿었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언제나 그 언약을 믿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